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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타인일기로 어디 누구의 삶을 상상해볼지 고민하였다.

지금 내 마음을 가장 슬프게 하는 것

그리고 어쩌면 내가 그 슬픔의 조각조차 못 느끼고 있을지 모르는 삶을 써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좀 더 깊이 이해하고 그 슬픔의 편린이라도 느끼고 싶었다.

같은 슬픔을 공감하며 함께 울어주고 싶었다.


마음에 걸려서 찾아갔던 무작정 차를 끌고 찾아간 팽목항

그 날 저녁 깡소주로 마음을 달래며 글을 쓰다가 상상에도 눈물이 났던

팽목항에서 자신의 보물을 잃고 헤매는 어느 누군가를 상상해 봤다.




"타인일기 : 행목항에서 길을 잃은 어느 누군가"


며칠 전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웃으며 소리 지르던 딸 은미는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그 미소가 얼마나 환하게 빛나던지 며칠 동안 그 미소가 머리에 맴돌아 피식 웃곤 했다.

‘수학여행지가 제주도라니’ 새삼 느껴지는 격세지감과 ‘나보다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구나’ 하는 만족감이 동시에 떠올랐다.


유난히 아침 잠이 많던 은미는 수학여행 날 아침에 늦잠을 자 평소처럼 헝크러진 상태로 가게 되진 않을까 걱정했다.

다행히 저녁배로 출발해 아침에 제주도에 도착하는 일정이라는 얘기에 안도한듯 보였다.

'크루즈를 타고 인천에서 제주도로 떠나는 수학여행이라니' 꽤나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 행복한 추억이 남게 될 딸아이가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배를 타본게 언제였든가…

불현듯 크루즈선의 선장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부유했던 숙이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갔다올께 엄마 나 없다고 울지 말고’ 장난스럽게 내 어깨를 토닥이고 떠나는 딸의 뒷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워 보였다.

발걸음이 가벼워서였을까? 딸의 뒷모습이 유난히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


“까먹은건 없지? 도착하면 연락 꼭 하고!”


오늘은 하지말자고 다짐했던 입버릇이 또 나오고 말았다.

딸도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 됐으니 조금씩 어른대접을 해줘야지 마음 먹지만 딸의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불안해져 꼭 먼가를 말하게 된다.


“오늘은 둘이서 오붓하게 외식이나 할까?”

남편의 제안에 집 앞 식당에서 가볍게 저녁을 떼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없는 집은 평온했다.

그 평온함이 쓸쓸하게 느껴져 마음이 찡했지만 ‘주책떨지 말자’ 며 자신을 다독였다.

자식에 관한 일에는 첫 사랑 때보다 감성적이 되는게 부모인가보다.

멍하니 이런 생각을 잠겨서 남편이 보고 있는 뉴스를 보듯말듯 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딸 은미의 문자였다.


안개로 이제 출발해 잉.. 배가 엄청커서 뱃고동 소리도 엄청 큰거 있지!

오~ 간다간다 완전 신나~ 엄마~~ 울지말고 잘자야 돼?


언제나처럼 애교 섞인 딸의 문자에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스르륵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아침시간의 여유를 만끽하며 회사로 향했다.

'은미는 지금쯤 자고 있으려나 아니면 바다를 보며 친구들 하고 소리 지르고 있으려나 아침은 꼭 챙겨먹었으면..’

출근길에 딸 생각을 했다.

평소보다 여유로워서일까? 오늘은 화장도 드라이도 모두 다 마음에 들었다.

괜한 자신감에 아침인사가 평소보다 20db은 높았던 것 같다.

그렇게 4월 16일, 오늘의 일과를 시작했다.


일에 조금씩 집중력이 더해질때쯤 휴대폰 진동이 느껴졌다.

조금 있다가 확인하고 싶었지만, 딸 아이가 일어나서 보내는 문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선이 휴대폰으로 향하였다.

시선이 다다른 액정 위에는 다른 세상의 언어처럼 느껴지는 한 마디가 써있었다.


엄마 배가 이상해.. 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기울어져서 물건이 막 쏟아지고…


잠시동안 세상이 정지하였다.

그리고 내 손가락은 무언가를 치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선생님은 옆에 있어? 선생님 옆에 꼭 붙어 있어 알겠지? 꼭


내 의지와 상관없이 빠르게 움직이던 손가락은 몇 번을 고치고 나서야 문장을 완성했다.

그리고 멈췄다.

잠깐의 정지 후 몸이 떨리기 시작하고 눈은 좌우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며칠처럼 느껴진 시간이 지나고 은미의 문자가 왔다.


엄마 사ㄴ랑해 엄마 아빠 내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ㅈ


급하게 쓴듯한 딸의 문자에 홀린 듯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왔다.

이미 며칠을 사무실에 갇혀있었던 것처럼 아침 햇살이 눈을 찔러 현기증이 느껴졌다.

어지럼이 가셨을 때는 이미 도로변에 서있었다.

그리고 휴대폰이 울렸다…









남편이었다.

아이에게 이상한 문자가 왔었다고 뉴스를 보니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아이가 탄 배 같다고..

현기증이 완전히 멈췄다.

몸에 떨림도 함께 멈췄다.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금방 끊겼다.

연락이 되질 않았다.

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연결이 되었다.


'일단 학교로 오세요’ 라는 얘기에 ‘무슨 일이냐’ 며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울먹임에 막힌 작은 소리만이 세어 나왔다.

‘괜찮은거죠..? 괜찮은거 맞죠..? 말 좀 해주세요. 괜찮다고.. 우리 은미 괜찮다고..’


남편에게 학교로 빨리 오라고 한 후 학교로 향하였다.

학교는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그곳은 절망에 빠진 얼굴들로 가득하였다.

그 가득함에 나와 남편의 존재가 더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는 버스에 탔다.

진도 팽목항으로 향한다고 했다.

버스 안에서 남편은 휴대폰으로 계속 가라져가는 배의 영상과 뉴스를 봤다.

그 영상 안의 배가 삼만광년은 떨어진 낯선 세상에 있는 것 같아 눈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꺠달았다.

나는 삼만광년 떨어진 낯선 세상의 버스 안에 앉아 있었다.


영겁처럼 느껴지던 시간이 지날때쯤 버스는 점점 좁은 길로 향해 가고 있었다.

8차선이 6차선이 되고 4차선이 되고.. 어느덧 2차선이 되었다.

차선이 줄어들 때마다 삼만광년은 떨어져 있던 낯선 세상은 어느덧 내 앞까지 와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흐르고 또 흘렀다.

얼굴을 적시고 옷을 적시고 내 몸이 다 잠길 때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둘러봐도 주위에 익숙한 것 하나 없었다.

이렇게 멀디 먼 곳의 차가운 바다에서 그 아이가 떨고 있다니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작은 아이.. 어른 행세를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내 자궁 안에 있을 때처럼 작은 그 아이..


낯선 바다 앞에서 버스가 멈췄다.

밀치듯 버스를 나와 바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미친듯이 바다에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은미야 엄마 왔어 걱정마 은미야 엄마 왔어


목소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됐을 때쯤 움켜쥐기 시작했다.

남편을 움켜쥐고 나를 막는 누군가를 움켜쥐고 그리고 또 누군가를 움켜쥐고..

계속 움켜쥐다 보면 저 바다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은미의 작고 예쁜 손도 움켜쥘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움켜쥐고 또 움켜쥐었다.


아이는 돌아오지 않은 채 나의 시간은 그곳에서 멈췄다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한 없이 멀었던.. 이제는 익숙해진 거리

하지만 내 아이와 나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낯설은 거리


나는 오늘도 팽목항에 간다.

한 없이 무기력 했던 나 자신과 한 없이 나를 믿고 기다리는 내 딸이 있는 그 곳으로 간다.








2017년 2월 17일 팽목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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